Latrinxia: A New Utopia, 2019
Exhibited at 5%, Seoul, 2019
Supported by Seoul Foundation of Arts and Culture

라트린시아: 새로운 유토피아 Latrinxia: A New Utopia / 3D printed plastic, silicon tube, water pump / dimensions variable / 2019

똥꼬충 Ttongkko-Chung (anus-worm) / anus silicone casting, silicone tube / dimensions variable / 2019

Anus Baptizes Me / mirror, digital printing on adhasive sheets, stainless steel, plastic / 30x58x2cm / 2019



똥꼬충 Ttongkko-Chung (anus-worm) / anus silicone casting, silicone tube, 3D printed plastic, LED lighting / dimensions variable / 2019

휴지 Toilet Paper / laser cut toilet paper / 12x12x10cm / 2019


아담의 창조 The Creation of Adam / digital printing on fabric / 80x40cm / 2019

불은 미래에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할 것입니다 2 Fire Will Keep Your Heart Beating in the Future 2 / stainless steel, rope, Skewer, queer talisman (calligraphy by Taeyeon Kim) / dimensions variable / 2019

Photo by Ii Eun

세례 받은 자들 / Baptists




<라트린시아: 새로운 유토피아 / Latrinxia: A New Utopia>

듀킴은 무속신앙과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적 모티브를 활용하여 경멸의 표현인 ‘똥꼬충’을 재맥락화한다. 웹에서는 남성 동성애자를 경멸조로 칭하는 ‘똥꼬충’이라는 표현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이와 비슷하게 영미권에는 Faggot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번 전시는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화형: Fire and Faggot>의 연장선상에 있다. 변화의 힘을 지닌 불과 정화의 힘을 지닌 (변기)물을 통해 두 공간은 연결된다.
듀킴은 비하의 표현인 똥꼬충을 물리적인 실체를 가진 것으로 재현하고,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많은 종교들이 공통적으로 치르는 정화의식을 차용한다. 하지만 똥꼬충이 정화의식을 치르는 장소는 다름 아닌 화장실(Latrinxia)이고, 그 물은 변기에서 나온다. 변기물은 물이 상징하는 깨끗함과는 거리가 먼, 더러운 물이다. 오염된 물로 정화함으로써 비로소 순수한 상태가 된 똥꼬충의 역설은 비천한 것과 고귀한 것을 뒤집고, 그 경계를 무화시켜 버리는 퀴어적 실천을 암시한다. / 글.이준영


샤먼 HornyHoneydew의 신성한 불의 의식을 통해 인류는 똥꼬충으로 알려진 새로운 존재로 변이되어 새로운 유토피아적 세계 Latrinxia로 옮겨졌다. 인간에게 깃들어있다고 여겨지는 두 종류의 영혼인 혼백 중 샤먼은 불의 의식을 통해 인간의 신체 한 부분을 혼(魂)으로 날아올렸다. 이를 통해 인류를 멸망하는 지구에서 탈출시켜 새로운 행성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행성의 이름은 목욕, 청소 또는 씻는 행위를 뜻하는 라틴어 lavatrina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로마에서 화장실은 공중목욕탕에 위치해 있었고, 청결과 정화에 필수적이었다. 불이 변화시키듯 물은 정화시킨다.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종교에서 발견되는 정화의식에서 볼 수 있듯 물은 몸이 영적인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Latrinxia에서 똥꼬충은 성별을 넘은 무성 생물로 순수한 상태이자 이상적 상태로 존재하며, 빛의 에너지로 변이하고 번식한다. 똥꼬충은 성별과 성적 분열을 넘어 유토피아 세계에 살고 있는 새로운 인간적 발현을 나타낸다. / 글.듀킴


Dew Kim uses various religious motifsㅡfrom shamanism to Christianityㅡto decontextualize the expression ‘Ttongkko-Chung’ The word literally means ‘Anus-Worm’ and is a homophobic expression often used online, mostly to despise male homosexuals. It is similar to the word ‘faggot’ in English. This exhibition is an extension of another ongoing exhibition at Artist Residency TEMI: Fire and Faggot. Through the transformative power of fire and the purifying power of (toilet) water, two separate spaces are now connected.

Dew Kim reproduces the insult ‘Ttongkko-Chung’ by giving it a physical presence, via a purification ritual inspired by many religions. However, the place where Ttongkko-Chungs hold the purification ritual is nowhere else but a bathroom (Latrinxia), and the holy water comes from the toilet. Toilet water is dirty, and is far from what water normally symbolizes: cleanliness. This paradox becoming pure at last only after cleansing yourself with dirty water implies a certain kind of queer action: flipping what is vulgar and what is noble upside down, erasing the border between the two. / written by Junyoung Lee

By the holy ritual of fire performed by the great shaman HornyHoneydew, humankind is now transformed into a new being, known as ‘Ttongkko-Chung,’ and is transported to ‘Latrinxia,’ a new Utopian world. Through the ritual of fire, the shaman levitates one part of the human body up to ‘Hon,’ which is one part of ‘Hon-Baek,’ the two kinds of spirit that are believed to exist inside every human being. As a result, humankind was able to escape the collapsing Earth and move on to another planet.

The planet’s name comes from the Latin word ‘lavatrina,’ which means ‘to take a bath, cleanse, or wash.’ In ancient Rome, a toilet was placed inside public baths, and was essential for personal hygiene and purification. While fire transforms, water purifies. As found in purification rituals from most religions around the world like Hinduism, Buddhism, Islam, Christianity, Judaism, water readies one’s body to be able to communicate in a spiritual way.

In Latrinxia, Ttongkko-Chungs are no longer beings of two divided sexes, but are sexless and beyond sex, always in their pure and ideal state of being. They use light energy for metamorphosis and breeding. Ttongkko-Chungs are an epiphany of a new humanity, living in a utopian world beyond sexes and sexual divisions. / written by Dew Kim


<양각의 기술 / the art of relief>  

OO녀 등의 호명을 통해 규범을 어긴 여성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것, ‘정신병자’라는 표현을 비하의 의미로 쓰거나 범죄자가 정신질환자라는 점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하는 것, 타인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에 대해 조롱하거나 관심을 쏟는 것은 모두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한 사회에서 성원권을 가졌다는 사실이 진정한 의미에서 환대받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불거지는 백래시(backlash)에 대한 논의, 여전히 만연한 소수자에 대한 낙인찍기는 이미 수차례 이야기되었던 의제라도 다양한 시점에서 새롭게 이야기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정체성 논의에 있어 중요한 의제인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뿐만 아니라,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에 포섭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관점을 통해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요소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함께 전시 <양각의 기술>은 정체성을 가시화하고 긍정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지금의 정체성 담론에 새로이 포섭될 수 있는 영역과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듀킴, 리단, 장파는 일반적인 믿음과 편견의 토대를 의심하거나 억압의 언어를 재전유하고, 혹은 숨겨져 왔던 것을 가감없이 드러내 보인다. 그러한 수행에 있어 이들의 퀴어, 정신질환자,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어떤 사회적 기준으로부터의 이탈이나 부정성을 더 이상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결핍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정립의 도구로 사용한다. 들뢰즈는 욕망이 결핍에 의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임을 주장한다. 즉 욕망한다는 것은 패인 곳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평면에서 돌출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욕망은 구축과 생산의 배후에 놓여 있다. 이들은 움푹 패인 판을 뒤집어 돌출점을 만들어내며, 성실하게 ‘욕망’한다. 무언가의 결여가 아닌 그 무엇 자체를 추동력 삼아서.

하지만 양각이 상징하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그 튀어나온 면이 결국 원래의 표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양각은 표면을 기준으로 높낮이가 있는 수직의 체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옆에서 보면 돌출부들은 모두 균일한 표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서로 다른 존재들도 결국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원래는 하나였던 표면을 나누어 지닌 양각의 돌출부와도 같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궁극적인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 자체를 좋은 삶을 위한 기술(art)로보는데, 이를 통해 사랑을 목적점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다. 마찬가지로 <양각의 기술>은 어떤 이상이나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조형해야 할 모양으로서의 돌출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롭게 욕망하고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 “깊이가 아닌 표면에서 미끄러지며 그 평면에서 위계 없이 노는 것”(제목 ‘양각의 기술’에 관한 대화 중 장파 작가의 표현을 인용하였다.)이 양각의 기술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돌출된 표면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세계는 무수한 양각의 집합 그 자체이다. / 글.이준영

Denouncing someone who varies from the norm especially harshly when she is a woman, using the expression ‘mental patient’ as a degrading term and emphasizing the fact that an offender has a mental disease, and mocking another’s sexual orientation and identity: these phenomena occupy a common context. That is, the fact that someone has citizenship in a society doesn’t necessarily mean that he or she is welcomed in the true sense of the word. The discourse around the conservative backlash that has recently surfaced, and the ever prevalent stigmatizing of minorities suggest a necessity to talk about the old issues again from diverse perspectives. Besides, there are not only significant issues of race, gender, sexuality and disability but also new elements that are not yet embraced by the discourse on identity, but might be interpreted through it.

Based on this idea, the exhibition the art of relief tries to explore rendering one’s identity both visible and positive, and the new possible areas and subjects that can be actively embraced by the identity discourse of this era. Dew Kim, Lithan and Jang Pa cast doubt on the foundations of common beliefs, re-appropriate the language of oppression, and expose the hidden. In their performances, their identities as queer, a mental patient, or a woman do not imply negativity or detachment from a certain social standard. Rather, they appropriate those things which are regarded as deficiencies according to norms, as tools to create the new. Deleuze asserts that a desire is not derived from deficiency, and is positive per se. That is, desiring means sticking out from the plane, not filling the empty hole. Desire grounds construction and production. They reverse the depressed plane and make a relief, the restless desire not driven by the lack of something but by the thing itself.

However, it seems ironic that the apices of each projection cannot escape from the original surface, consider ing that the relief symbolizes positivity. A relief composes a vertical system with high and low levels, but the projecting points have an equal surface when it is seen from the side. All the different beings are like the points that originally shared one surface. In The Art of Loving, Fromm asserts that love is not something that we should try to achieve, but rather an art for a good life, deviating from the perspective that regards love as a final destination. Likewise, the art of relief is not about shaping with an ideal thought or a certain end. We would like to say that it is about desire existing freely and naturally, “getting out of the depths, slipping on the surface and playing on it without any hierarchy.”(a quote by Jang Pa during a conversation about the title ‘the art of relief’) Without exception, we all have an uneven surface, and the world is a work of relief itself. / written by Junyoung Lee